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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행복 속에 살고 있었다(동물친구들과 함께 하는 삶)

너티니 2026. 3. 7. 16:49

우리 집 강아지는 올해 10살이다.
견종은 시바이누.

다들 알다시피
‘시바스크림’, ‘안 가시바’로 유명한 그 시바다.

이 친구를 데려오게 된 계기는 꽤 단순하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어느 날,
어떤 여성분이 시바견과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도 키우고 싶다.”

 

그리고 정말로 데려오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단순한 선택이었다.

아기시바를 처음 데려온 날 (정말 시바가 맞냐고 몇차례 물어봤었다)

 

처음 데려온 날도 기억이 난다.
보통 강아지들은 낯선 집에 오면 울거나 주눅 드는 경우가 많다는데,

우리 집 시바는 전혀 아니었다.

울지도 않았다. 대신 집 안을 복작복작 헤집고 다니며 탐험하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 자기 집이었던 것처럼.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시바이누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친구들은 자아가 아주 강하다.

고집도 세고 웬만해서는 사람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우리 집 시바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동안 꽤 애를 먹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어 강아지를 데리고 차에 탔다.

그리고 마주 보고 앉았다.

말 그대로
눈싸움을 시작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결국 먼저 시선을 피한 건 우리 집 시바였다.

눈싸움의 승리자는 나였다.

후훗.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우리 강아지는 고집을 조금은 꺾고
내 말을 들어주는 것 같다.

그때 승기를 잡은 게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중요한 순간이었다.

아마 그때 밀렸다면 지금쯤 우리 집 서열은
내가 아니라

시바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순하디 순한 시골 누렁이가 되었다.

 

이 친구와 함께 지내며 사건사고도 꽤 많았다.

우리 동네에는 대부분 흰 강아지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우리 강아지처럼 황구는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황구가 사고를 치면

그 범인이
우리 강아지로 몰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한 번은 동네에서 개물림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도 범인으로 지목된 게 우리 집 강아지였다.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드리고, 동물병원까지 동행해서

우리 강아지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 했다.

작은 시골이라 그런지 이미 동네에서는
우리 강아지가 못된 강아지로 낙인이 찍혀버렸었다.

물론 지금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 녀석이 순둥이라는 게 알려졌다.

 

 

 

 

 

 

 

 

 

 

 

 

 

우리 누렁이를 짝사랑하는 강아지도 있다. 하지만 우리 시바 녀석은
귀찮다는 듯이 대한다. 역시 시바답다.

 

강아지는 주인을 닮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우리 누렁이를 보면서, 나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랑이 시바 녀석을 한참 관찰하더니 말했다.

 

“어쩜 자기 주인이랑 똑같냐.”

 

도대체 어느 구석이? 알고 보니 외모가 아니라 성격이었다.

고집 세고, 독립적인 게 나와 꼭 닮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생각이 들었다.

아,

동물도 사람의 성격을 닮을 수 있구나.

 

시바와 함께 살다 보니
우리 집에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동물 친구가 생겼다.

바로 이 녀석이다.

 

신랑이 우리 앵무새를 보더니 또 한마디 했다.

“아니… 얘도 주인 닮았네.”

앵무새까지?

"강아지랑 앵무새랑 자기랑 성격이 똑같아!"

 

같이 살면, 닮는다는 게 사람뿐만이 아니라

동물과도 닮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귀염둥이들과 닮았다니 기분은 좋지만, 

분명히 해둘 부분이 있다.

 

우리 집 시바와 나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예를 들면,

우리 집 시바는
집도 못 지킨다.

나는… 집은 잘 지킨다.

 

시바는 털이 왕창 빠진다.
물론 나도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긴 한다.

 

시바는 편식이 심하다.
나도 편식을 한다.

 

여기까진 비슷하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조금 다르다.

 

시바는 싹수가 없다.
음… 내 생각에는 나는 그런 편은 아니다.

 

불러도 대답을 안 한다.
나는 그래도 응답은 잘하는 편이다.

 

귀찮으면 주인이고 뭐고 없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잘 삐진다.
강아지만큼 자주 삐지진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바는 의리가 없다.

하지만

여자는 의리 빼면 시체다.

 

… 아마도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다.

 

그래도 한 가지는 인정해야겠다.

고집 세고 독립적인 건 확실히 나를 닮았다.

 

 

이렇게 동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일상은 이미 이 친구들과 함께 흘러가고 있다는 것.

 

어쩌면 나는 이 친구들과 살아가며 생각보다 많은 위로와
작은 행복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신랑이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삶이 주는 사소한 행복의 중요성을 잘 알아.”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동물 친구들과, 그리고 자기가 내게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알아?”

잠시 생각하다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덧붙인다.

“자기도 과거에서 조금 벗어나서 지금의 행복을 즐겼으면 좋겠어.”

 

나는 이미 행복 속에 살고 있었나 보다. 

 

당신은 어떤가.

지금의 행복을
잘 누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