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jxlsl 님의 블로그

조금 용감해진 하루 (제천 작은동산) 본문

발걸음의 기록

조금 용감해진 하루 (제천 작은동산)

너티니 2026. 3. 11. 15:02

휴일에 등산을 다녀왔다.

워낙 길치에 방향치인 나는

호기롭게 혼자 떠난 산행에서 길을 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잘 믿지 못한다.
결국 등산모임에 가입해 사람들과 함께 등산하는 방향을 택했다.

 

이번 산행일정에 눈에 띄는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시산제'

얘기만 들어봤지, 직접 경험은 해보지 못한 탓에 호기심 풀가동! 

와 그런데, 문제는 이 등산모임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는 것이다.

45인승 버스를 대절해서 가는데, 나의 순번은 51번. 

결국 대기로 접수. 

가면 좋고 안되면 뭐 어쩔 수 없고 지만 아쉬움은 남을 것 같다 생각하던 찰나!

대기자가 점점 늘어 결국엔 버스 두대로 가는 걸로 결정! 

 

그렇게 해서, 총 77명의 회원이 시산제에 참석하게 되었다.

아 중요한걸 놓쳤는데, 시산제를 올린 장소는 

제천의 '작은동산'이다. 

청풍호가 훤히 보이는 절경이 멋있는 작은동산 (작은동산이라고해서 얕봤다간 초입에서 다리가 털털..)

 

버스를 타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목적지를 가는 상황은, 

터미널에서 티케팅을 하고 어딘가로 이동할 때나 겪어봤지,

이렇게 취미생활로 모르는 이들과 함께 같은 곳을 오르는 경험은 처음이다.

내 옆자리엔 이쁜 언니가 (나이는 사전에 대장님께 전해 들었다) 착석해 있었는데 

이쁜 사람을 보니 긴장이 좀 풀렸지 뭔가.

먼저 말을 걸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도착한 제천의 작은 동산.

잔뼈가 굵어 보이는 여러 회원님들께서 시산제 준비를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신입이라고 해서 어리바리하게 가만히 있을 순 없으니, 일손을 보탰다.

배낭을 메고 왔다 갔다 하고 있자니 어떤 분이 다가와서는 '가방 저 앞에 두세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유가 궁금했는데, 사람 대신? 무사기원을 비는 용도인 듯.  

시산제는 매년 연초에 산악인들이 산신령님께 지내는 제사라고 한다.

 

음... 돼지머리는 티브이에서나 봤지 실제 돼지머리는 처음 접했는데, 그 형태가 다소 충격적이었다.

또 한편으론 '저 돼지머리는 어떻게 처리하는 거지?' 하는 호기심이 들어 옆에 계신 분께 여쭸더니, 

나중에 잘라서 먹는다고 한다. (이것 또한 충격적이다)

여러모로, 새로운 경험과 정보를 획득하게 된 계기였다.

 

시산제를 지내고, 정성스레 싸 오신 음식을 함께 나눠먹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다.

자! 이제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작은 동산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산행을 함께한 일행분들. 좋은 분들을 만나 영광이었습니다! 

 

함께 음식을 나눠먹던 분들과 조를 이뤄 자연스레 산행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 

너무 좋은 분들과 산행을 하게 되니 기쁘기도 하고 신이 나서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게 아닌가?

 

작년 여름에 경주 남산을 마지막으로 이번이 첫 등산인데,

이렇게 좋은 날씨에 좋은 분들과 뷰 멋진 곳에서

살며시 맺히는 땀방울에 기분이 업 될 수밖에! 

 

오르는 길에 사진도 촬영하고 경치도 구경하며 도달한 작은 동산 정상.

정상석이 너무 귀엽더라.

 

사진 찍는 걸 선호하지 않아 촬영할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며 하도 떠밀어 찍을 수밖에 없었던 

사진 찍는게 왜 그리도 어색하고 부끄러울까.

 

가까스로 사진 한 장 남기고, 하산! 

하산길은 정말 완만해서 마치 등산이 아닌, 트래킹을 하러 온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일행들과 여러 대화를 나누며 무사히 하산! 

이번 산행을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도 할 수 있겠구나.'

 

목적지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새로 온 신입들은 돌아가며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것도 앞에 나가서 마이크를 잡고 말이다.

정말 정말 하기 싫었지만, 나만 쏙 빠지면 그것 또한 튀는 일이 아니던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게 더 싫다는 판단에 

내 차례에 부들부들 떨면서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00입니다. 나이는 00이고요 "

이렇게 시작을 했는데, 수많은 눈이 한꺼번에 나를 바라보자 그 시선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제가 내향인이라.."

그다음엔 뭐라고 했더라..

아무튼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버스 바닥도 보고 맨 뒤에 천장도 보고 이래저래 눈동자를  굴리다 

자리에 돌아온 기억이다.

 

등산을 다녀와서 신랑님과 통화하며

"자기야 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스스로를 다독이는 중이야. 그리고 오늘 그렇게 겪고 보니까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신랑님이 대견하다며 ‘우쭈쭈’해주는 덕에
괜히 코가 살짝 높아졌다가, 다시 내려왔다.

 

이번 산행을 하면서
‘아,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결혼식도 그냥 해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