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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xlsl 님의 블로그
어머님을 그리며. 본문
아침 6시 40분.
내가 일어나는 시간이다.
양치를 하고, 물을 마신 뒤 마당으로 나가
우리 집 강아지와 인사를 한다.
밥을 먹이고 산책을 나서기 전,
신랑님께 톡을 남긴다.
‘굿모닝, 잘 잤어?’
평소 같으면 금방 답이 오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연락이 없었다.
십 분, 삼십 분.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는 동안, 이상하게 불안했다.
전화를 받은 신랑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위독하셔서, 병원에 왔어.”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전화를 끊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어머님을 처음 뵌 건 작년 11월이었다.
어색한 자리였지만,
내 이야기를 경청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는 병문안이었고,
세 번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던 날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편안히 잠드신 모습으로 어머님을 다시 뵈었다.
울음을 참고 있는 신랑님을 보며
나는 더 많이 울었다.
나는 상주 명단에
내 이름도 올려달라고 했다.
아직 가족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다.
신랑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상을 온 사람들은
신랑님에게 물었다.
“언제 결혼했어?”
그때마다 그는 잠깐 말을 고르고는 대답했다.
“아직이요. 곧 할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저렸다.
이틀 전, 우리는 웨딩홀 계약을 하고 왔는데.
결국 어머님은 아들의 결혼을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어머님의 빈자리 때문에 그런 걸까...
슬퍼할 새도 잠시,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신랑님의 친구들이
전국에서 하나둘 모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밤을 지키고, 끝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야.”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들이 말한 ‘할 수 있는 만큼’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은 것이었다.
그들을 보며, 신랑과 나는 다짐했다.
이 은혜를 반드시 그들에게 돌려주기로.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우리는 어머니 댁에 들렀다.
액자 속 사진들.
함께 찍은 사진들.
그 앞에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서로를 붙잡고 울었다.
둘이 부둥켜안고 흐느껴 울다,
“이제 그만 울자.”
신랑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잘 사는 걸 더 바라실 거야.”
가장 힘든 사람이
나를 먼저 다독이고 있었다.
신랑님이 나를 위로한다.
본인이 가장 힘들 텐데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울음을 그쳤다.
잘 살아야겠다고,
더 단단해지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이
비워진 것처럼 헛헛하다.
아마 당분간은
이 빈자리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게 될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잘 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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